화웨이의 초대용량 SSD: 핵심은 더 좋은 낸드가 아니라 쌓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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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초대용량 SSD: 핵심은 더 좋은 낸드가 아니라 쌓는 방법이다

화웨이의 초대용량 SSD, 핵심은 “더 좋은 낸드”가 아니라 “쌓는 방법”이다

화웨이가 파리 IDI Forum 2026에서 새로운 초대용량 SSD를 공개했다. 용량은 61.44TB와 122.88TB, 그리고 개발 중인 245TB 모델까지 언급됐다. 숫자만 보면 단순히 “큰 SSD가 나왔다”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이번 발표의 핵심은 용량보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규제를 우회하는 방식에 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미국 규제로 화웨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글로벌 메모리 업체의 최신 고성능 3D NAND를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 최신 낸드는 층을 아주 높게 쌓아 저장 용량을 늘린다. 예를 들어 아파트로 비유하면, 같은 땅 위에 더 높은 고층 아파트를 올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화웨이는 이 길이 막히자 다른 방식을 택했다.
“더 높은 아파트를 못 지으면, 같은 땅 안에 방을 더 촘촘히 배치하자”는 접근이다.

그 핵심이 이번에 언급된 DoB, Die-on-Board 패키징이다.

DoB가 뭐길래 중요한가

일반적인 SSD는 NAND 메모리 칩을 먼저 패키지로 만든 뒤, 그 패키지를 SSD 기판에 붙인다. 즉 메모리 다이를 한 번 포장하고, 그 포장된 칩을 다시 보드에 얹는 구조다.

반면 DoB는 이름 그대로 Die-on-Board, 즉 메모리 다이를 보드 위에 직접 올리는 방식이다. 중간 포장을 줄이고, 공간을 더 촘촘하게 쓰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기존 방식에서는 낸드 다이를 많이 쌓는 데 한계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기존 패키징에서는 대략 16단 수준이 한계였지만, 화웨이의 DoB 방식은 최대 36단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최신 고적층 3D NAND를 쓰지 못하더라도, 패키징 구조를 바꿔 저장 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방식으로 저장 밀도를 약 33%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화웨이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최신 낸드를 못 사도, 포장하고 쌓는 방식을 바꾸면 고용량 SSD를 만들 수 있다.”

왜 지금 이 기술이 나왔나

배경에는 미국의 기술 규제가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커질수록 필요한 것은 GPU만이 아니다.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빠르게 불러오는 저장장치, 즉 SSD도 중요해진다. 특히 AI 학습과 추론에서는 모델, 데이터셋, 로그, 벡터 데이터베이스, 캐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중국 입장에서는 AI 인프라를 키우려면 GPU뿐 아니라 메모리와 스토리지도 자체 공급망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최신 3D NAND 접근이 제한되면, 고성능·고용량 SSD를 만드는 데 병목이 생긴다.

그래서 화웨이는 YMTC 같은 중국산 NAND를 활용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패키징 기술로 보완하려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단순한 부품 국산화가 아니다.
“최고급 원재료를 못 구하면, 설계와 조립 방식을 바꿔 전체 성능을 맞춘다”는 방향이다.

장점만 있는 기술은 아니다

물론 DoB가 마법 같은 해결책은 아니다.

다이를 보드에 직접 많이 올리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발열이다.
메모리 다이를 촘촘하게 쌓으면 열이 빠져나가기 어렵다. SSD는 온도가 올라가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수명이 줄어들 수 있다.

둘째, 신호 무결성 문제다.
쉽게 말하면 데이터가 오가는 전기 신호가 깨끗하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다이를 많이 붙이고 배선을 복잡하게 만들수록 신호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수율과 신뢰성이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제조 과정에서 불량을 줄이기 어렵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화웨이는 이런 문제들을 기술 개발로 해결해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실제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장기간 사용했을 때 성능, 발열, 내구성, 비용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앞으로 더 확인이 필요하다.

중국 SSD 산업에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발표가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SSD 시장에서 단순히 “싼 제품”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 메모리 산업은 선두 업체를 따라잡는 입장이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고적층 3D NAND와 대규모 양산 경험에서 강점이 크다. 중국 업체들은 기술 격차와 장비 규제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화웨이의 DoB SSD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최신 낸드 공정에서 바로 정면승부하기 어렵다면,
패키징·시스템 설계·데이터센터 최적화로 우회로를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AI 데이터센터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다. 외산 고성능 SSD 공급이 제한되거나 비싸다면, 조금 다른 구조라도 자국산 대안이 필요하다. 화웨이가 61.44TB, 122.88TB 제품을 양산하고 245TB까지 준비한다면, 중국 내 클라우드와 AI 인프라에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는 위협일까

당장 글로벌 프리미엄 SSD 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위협이라고 보기는 이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낸드 공정, 컨트롤러, 펌웨어, 검증, 글로벌 고객 신뢰에서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방향성은 봐야 한다.

중국은 기술 규제를 받을수록 “없는 기술을 기다리는” 쪽보다 “쓸 수 있는 기술을 조합해 대안을 만드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DoB SSD도 그런 흐름의 일부다.

즉 단기적으로는 중국 내수와 AI 데이터센터용 대안의 의미가 크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SSD 가격과 경쟁 구도에 압력을 줄 수 있다.

특히 초대용량 SSD 시장은 AI 서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이 시장에서 중국산 대안이 늘어나면, 프리미엄 제품은 여전히 선두 업체가 가져가더라도 중간 가격대와 특정 내수 시장에서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핵심 정리

화웨이의 DoB SSD 발표는 단순한 신제품 뉴스가 아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은 최신 3D NAND 접근이 제한되자 패키징 혁신으로 저장 밀도를 높이는 우회로를 찾고 있다.

둘째, DoB는 낸드 다이를 보드 위에 직접 올려 공간을 더 촘촘히 쓰는 방식이다. 고층 낸드를 못 쓰더라도, 쌓는 구조를 바꿔 초대용량 SSD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이 기술은 중국 AI 데이터센터와 국산 메모리 생태계에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발열, 신호 안정성, 장기 신뢰성은 계속 검증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뉴스의 본질은 “화웨이가 큰 SSD를 만들었다”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이 반도체 규제 속에서도 AI 인프라에 필요한 저장장치를 자체 방식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중국 시장과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바라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될 것이다.